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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EO 성도GL 대표이사 김상래
다시 묻습니다, 문화경영에 동의합니까?
CEO의 소신이 ‘문화경영과 메세나 활동’이라고 해서 모든 직원이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상황이 이렇게 좋지 않은데, 우리가 피땀 흘려 번 돈을 왜 다른 사람에게 선뜻 건네줘야 하는지 의구심을 갖는 직원도 있을 법하다. 대기업과 같은 거대 조직이 아닌, 56명이 알뜰살뜰 가꿔가는 회사라면 큰 결정 앞에서 조직원의 동의가 더욱 필수다. 글 박용완 기자(spirate@) 사진 강태욱
김상래 대표는 달변가다. 가끔씩, 달변가는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아니냐며 그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그러나 말 이전에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명문화(明文化)’ 시켰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말이 글이 되면, 진짜 힘을 갖는다. 김상래 대표는 글이 갖는 힘, 정확히 말해 ‘활자 인쇄술’이 갖는 위대한 힘을 매 순간 깨달으며 살아왔다. 그가 CEO직을 맡고 있는 성도GL은 창사 35주년을 맞이한 인쇄•출판 소모자제 전문업체로, 후지 필름 그래픽 아트 그룹의 한국 내 책임 기업이기도 하다. 전 직원이 60명이 채 되지 않는 중소기업이지만, 국내 해당 시장의 50퍼센트를 점유하는 단단한 기업이다.
앞서 얘기한 김상래 대표의 달변가 기질을 처음 확인한 것은 지난 10월 30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메세나 관련 심포지엄에서다. 이날 김상래 대표는 ‘문화를 통한 기업의 사회적 공헌과 건전한 기업문화 정착’을 주제로 약 10분간의 발표를 가졌다. 충분치 못한 시간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게 펼치고 자리를 떴다. 그래도 궁금한 것이 많아 다시 김상래 대표를 찾았다. 드뷔시의 ‘피아노를 위하여’가 흐르는 충무로 집무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한쪽 벽을 가든 채운 수많은 책들이다. 2002년 성도GL의 CEO로 취임한 김상래 대표는 본격적인 메세나 활동 이전부터 문화경영을 지향해왔는데, 그중 제일이 독서운동이었다. “저도 책을 많이 읽는 편이고, 직원들에게도 늘 독서를 권합니다. 생일을 맞은 직원에게는 평소 갖고 싶었던 책을 선물하는데, 이 책에 모든 직원들이 빽빽이 축하 메시지를 채워넣습니다. 세상에 단 한 권밖에 없는, 정말 의미 있는 책을 선물받는 셈이죠.” 평소 피터 드러커의 저서들을 소중히 읽어왔기 때문일까. 김상래 대표 역시 피터 드러커처럼 ‘자문’하길 좋아한다.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근본적인 행동가치는? 우리 회사가 오늘 밤 사라진다면, 남아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아쉬워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팔고 있는가? “아침에 출근하면 직원들과 늘 얘기하는 것들입니다. 왜 여기 모였지? 내가 아니면 안 되나?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이런 기본적인 질문들을 늘 합니다. CEO가 됐을 때, 가장 절실했던 것이 조직원을 하나로 묶는 공동 가치관의 정립이었습니다.” 그렇게 새로이 정립된 비전 중에 ‘문화경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김상래 대표는 독서운동을 시작하고, 음주접대 관행을 과감히 버렸다. 직원들의 개인적인 시간을 버리는 것도 모자라 때때로 도덕적이지 못한 상황에까지 이르는 음주접대 대신, 고객과 함께 오페라와 뮤지컬, 전시회를 봤다. 이 과정이 확대되어 메세나 활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성도GL의 메세나 활동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2007년 헤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창단을 지원했고, 장기 후원 파트너십을 맺었다. 같은 해 헤이리에 ‘공간 퍼플’이라는 미술관을 개관했다. 문화소외계층 청소년들에게 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해주기 위해 마련한 ‘삼더펀드’ 역시 3년간 운영해왔다. “헤이리 예술마을 이사회 멤버로 활동 중인데, 헤이리에 음악을 소재로 한 콘텐츠가 없어서 오케스트라를 만들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메세나협의회 중소기업 매칭펀드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어령 선생께 헤이리에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볼까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지역사회 오케스트라를 후원하는 것은 음악당 하나를 짓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하시더군요. 서현석 교수가 상임 지휘자를 맡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형식으로 단원들을 조직했고, 파주 지역 주민들을 초청해 공간 퍼플 앞마당에서 봄•가을, 연2회의 공연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작은 조직일수록 메세나 활동에 대한 조직원 동의가 필수 문화경영•메세나 활동에 대한 김상래 대표의 소신은 그 역사가 길다. 성도GL에 오기 전, 그는 15년간 미국계 기업(시티은행과 다우케미컬)에서 일했다. 뉴욕 시티은행에 근무하던 1984년, 청년 김상래는 센트럴파크에서 뉴욕 필의 콘서트를 보았다. 공연도 공연이었지만, 반바지 차림에 아이스크림•와인잔을 들고 콘서트를 관람하는 뉴요커들의 모습은 김상래가 꿈도 꾸지 못한 광경이었다. 센트럴파크를 울리는 음악은 지친 뉴요커들에게 안식과 위안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뉴욕 시민이라는 자긍심도 느끼게 했다. “당시 시티은행은 뉴욕 필의 스폰서였는데, 그 공연을 보면서 내가 다니는 회사에 그렇게 존경심이 생길 수가 없었어요. 88서울올림픽 때 뉴욕 필을 한국에 초대해서 공연을 열어준 것도 시티은행이었죠. 문화•예술에 대한 기업의 투자는 그 수혜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회사 조직원들의 자부심을 키워주고, 국가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꿔놓습니다.”
그러나 CEO의 소신이 ‘문화경영•메세나 활동’이라고 해서 모든 직원이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상황이 이렇게 좋지 않은데, 우리가 피땀 흘려 번 돈을 왜 다른 사람에게 선뜻 건네줘야 하는지 의구심을 갖는 직원도 있을 법하다. 대기업 같은 거대한 조직이 아닌, 56명이 알뜰살뜰 가꿔가는 회사라면 큰 결정 앞에서 조직원의 동의가 더욱 필수다. 결혼기념일을 맞은 직원의 배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감사’의 뜻을 전하고, 결혼하면 다니는 ‘중소기업’은 관두라는 여직원의 예비 시어머니를 설득하고, 자취하는 직원의 전기밥솥에까지 관심을 둔다는 김상래 대표. 이렇듯 직원들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그이기에 조직원의 동의가 없다면 메세나 활동을 추진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날은 새벽 2시에 영업부 직원의 전화를 받습니다. 진행하던 일이 성사가 안 됐다는 내용이죠. 자제 하나 팔기 위해 길 위에서 얼마나 많은 피땀을 흘렸는지 잘 압니다. 어떻게 번 돈인지, 얼마나 귀중한 돈인지 잘 압니다. 메세나 활동에 대한 전체의 동의가 있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과 토의가 이어졌어요. 우리 회사의 메세나 활동이 이처럼 활성화되고, 지속 가능했던 것은 제가 결정을 내린 후 조직원을 이해시킨 것이 아니라,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의견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중소기업에 다니다 보면 대기업 직원만큼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는 기회가 적습니다. 성도GL의 메세나 활동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자신이 직접 투자한 돈이 얼마나 의미 있게 쓰여지는지 지켜보면서 직원들 스스로 메세나 활동의 가치를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곧 회사에 대한, 직원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으로 이어지는 것이고요.”
우리가 흔히 ‘메세나 기업’이라고 인식하는 대부분은 대기업이다. 매해 수백•수천 억 단위로 이뤄지는 대기업의 메세나 활동은 기업의 ‘대외적’ 이미지 향상에 크게 일조한다. 반면 기업의 조직원이 느끼는 ‘메세나 기업으로서의 자긍심’, 즉 ‘내적’ 이미지 향상은 중소기업의 경우 더욱 그 가치와 효과가 높아보인다. “대학생들에게 중소기업의 실상과 비전을 알리는 특강에 강사로 초빙되곤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불나방처럼 오로지 대기업만 쫓는데, 안타까운 일이지요. 혁신과 도전을 즐기는 성향이라면 오히려 중소기업에 맞는 인재거든요. 물론 중소기업도 이러한 훌륭한 인재를 수용할 수 있는, 인재들에 걸맞는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회사의 경우 문화경영 도입과 메세나 활동 이후에 입사 지원자들의 수준이 한층 높아졌어요. 이는 중소기업에게도 메세나 활동이 매우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성도GL의 직원들과 김상래 대표는 수많은 자문자답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왜 여기 모였는가, 우리는 무엇을 파는가, 시장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우리의 가치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에게 문화경영과 메세나 활동은 여전히 유익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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