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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문화] 하얀 입방체 안에서 그 숨막히는 감격의 순간 하정미
2008/05/31 72396

하얀 입방체 안에서
저자 : 브라이언 오 도허티
출판사 : 시공아트
하얀 입방체 안에서
-갤러리 공간의 이데올로기

브라이언 오 도허티 지음/ 김형숙 역 (시공아트)

지난 생일책으로 받은 책이었는데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다가 이번에서야 완독을 하게 된 기념으로 독후감을 남겨본다. 늘 미술과 관련된 책을 읽다보면 학교 다닐 때 전공서적을 대했던 것처럼 얻고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친절히(?!) 대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벼락치기공부처럼 필요한 상황이 지나가면 다시 잡기가 어려워지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성도에서의 첫 생일 때 꼭 받고 싶었던 강렬한 갈망으로 선택한 책이기에 그 어떤 책보다 애착을 갖게 되어 반복해서 집어 들게 된다. 책에 남겨주신 앞 장의 축하멘트 중에 박병호 부장님께서 “도대체 하얀 입방체 안에선 무얼 해야 하나요?”라고 질문을 남기셨던 것을 기억한다.
갤러리나 뮤지엄 공간을 뜻하는 이 ‘하얀 입방체’ 안에선 정말 무얼 하면 좋을까? 그 안에서는 도대체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이 ‘하얀 입방체’에 대한 성장기와도 같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갤러리와 뮤지엄 공간의 변화를 미학적 관점으로 해석하고, 미술작품이 이제는 작품 자체의 의미보다는 맥락의 관점에서 읽혀지는 것처럼 전시 공간 또한 일종의 맥락과 관람객을 향한 언어화의 또 다른 방식이 되었음을 기술하고 있다.

미술관이나 전시장을 가면 우리는 먼저 미술작품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 작품은 이러한 이유로 그리고 어떠한 내용으로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하지만, 우리는 작품 자체의 의미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공간 자체가 주는 예술적 감흥을 놓치기 쉽다. 특히 벽면 가득 설치되어 있는 요상야릇한 설치작품들이나 행위예술들처럼 기존의 미술형식에서 탈피된 작품들을 보면 적지 않게 당황하면서 그것들이 주는 예술적 태도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미술작품 자체에 대한 현학적인 검증을 조금만 벗어나서 그 범위를 좀더 넓혀 생각해보면 공간 속에서 예술이라는 관점으로 발견될 아름다움은 기존의 미술형태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보다 더욱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더 이상 갤러리는 흰 벽면에 프레임된 작품이 걸리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하얀 입방체 안에서’는 갤러리 공간이 어떠한 미적 범주와 환경 가운데 현재의 자유로운 전시 공간으로 변화되었는지를 설명하면서 좁게는 갤러리의 공간에 대한 자유로움과 무한한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넓게는 공간 자체가 주는 예술적 감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갤러리 안의 관람자는 갤러리 내의 공간에 침입하는 제3자의 관점이 아닌 하나의 참여하는 의식자의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이제 더 이상 갤러리 공간은 흰 벽을 고수하지 않으며, 형식적인 좌대와 채광이 배제된 한정된 공간을 거부하고 있다.
이를 이 책에서는 ‘제스처gesture로서의 갤러리’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 제스처라는 단어를 통해 갤러리 공간 자체가 지니는 개념과 의식에 대해 피력하고 있고, 갤러리의 벽은 바탕이 되고 갤러리의 공간의 바닥은 일종의 좌대가 되고, 갤러리의 코너에는 의식의 소용돌이가 그리고 갤러리의 천장은 또 다른 하늘이 되었음을 말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갤러리 공간은 ‘하얀 입방체’로서의 또 다른 ‘대상’이 된다.
참으로 흥미로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공간’ 자체가 하나의 ‘제스처’가 된다는 표현은 이제는 이 하얀 입방체가 전시에 참여하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의 기회,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숨막히는 시각적 감격의 순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하얀 입방체(갤러리 공간)는 잠재력 있는 또 하나의 예술이 되고, 둘러싸인 공간은 연금술의 매개체가 된다. 그안에서 또다른 형태의 예술작품들은 공간에 놓여지고, 움직이고, 정기적으로 자리가 바뀐다.
정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이 탄력적인 공간은 어느새 예술의 또 다른 맥락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이 책에서 언급된 한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브 클랑의 <허공>이라는 작품이 그것인데, 1957년 파리 콜레트 알렌디 갤러리의 주변지역인 콩코드 광장을 그는 “본질적 상태의 그림 같은 감성의 현존을 증명한다.”라고 말하면서, 갤러리 거리의 외관을 온통 푸른색으로 칠하고 그리고 이 자체를 전시했다. 이브 클랑은 제스처로서의 갤러리를 콩코드 공간 전체에 자신만의 색인 ‘클랑 블루’를 칠함을 통해 그 자체를 전시하고 있다.
갤러리의 이 탁월한 제스처가 장소와 주제로서 갤러리 공간자체로 주인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은 공간 자체를 느끼고 몰입하기 위함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브 클랑은 늘 이렇게 기존의 숭배의 잔재로부터 예술적 대상물들을 분리시키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의 작업은 현실을 바라보는 너그러움이 있고, 유토피아적인 위트가 있고 그리고 좀 심하다 싶은 망상(!)이 있고, 그리고 초월을 나누는 측면이 있다. 그는 공간자체를 ‘그림과 같은 감수성’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공간으로서의 예술작품이 성장하고 진화하는 과정을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었다. 비록 쉽게 읽혀지지 않아서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지만, 점차 변화되고 다양화되는 미술에 대한 좀더 폭넓은 관점을 제공해주는 지식서라는 생각이 든다.
공간 퍼플을 통해 헤이리라는 이 예술의 메카에서 혁신적이고 영향력 있는 ‘그림과 같은 감수성’이 표현되어지길 기대해 본다.


비젼의3대요소
자기창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