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물성의 사유
저자 : 박영택
출판사 :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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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수많은 전시회의 작품들 중 식물성을 화두로 한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것으로, 식물과 자연, 생명 등을 통해 미술을 사유해보고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을 따스한 시선으로 헤아려 볼 수 있는 잔잔한 감동과 섬세한 마음깊이가 느껴지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박영택은 오랜 시간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수많은 미술작품들을 만나고 평론들을 써왔으며. 현재 경기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나는 미술이라는 분야에 들어서면서 이분이 기획한 수많은 전시회를 챙겨보았고, 쓰신 글들과 수많은 학회의 발표문들, 발간한 책들을 접하면서 큐레이터의 꿈을 키웠다. 운 좋게도 대학원 시절 이분의 강의를 듣게 되면서 많은 생각의 교류들과 배움이 있었다.
식물성의 사유는 우리 주변에서 소소히 나타나고 그리고 벌어지는 작은 대상들에 대해 아티스트들이 어떠한 관점과 생각을 가지고 표현해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섬세한 사고의 결과물들은 미술작품으로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식물성의 의미에는 우선적으로 식물을 주제로 다루는 미술작품을 수 있으나, 좀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그것은 거창한 주제나 현학적인 이념과는 동떨어진, 진솔한 삶에서 체득된 경험과 육성으로 버무려진 미술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하찮게 여겨지거나 힘없고 쇠락한 것, 남루한 자신의 일상과 함께하고 있는 것, 버려지고 소외된 것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건져 올려 숨을 불어 넣어주고 온기를 채워주는, 길들여지지 않는 시선과 감각이 살아있는 대상이다. 저자는 겸손하게도 식물성이라는 주제 하에 선택한 미술작품들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작은 읊조림'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동안 일상과 일에 묻혀 지나쳐버리거나 발견하지 못했던 섬세한 감성의 그 흔적들을 찾아내고 그 메마른 감성들을 채울 수 있었던 책이 되었던 듯 하다.
풀, 꽃, 씨앗, 사군자/탈사군자, 나무, 숲, 산, 땅, 새, 하늘, 바다, 돌, 정물, 풍경/반풍경.. 각각의 chapter에는 적게는 4명 많게는 10명의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소개되고 있다. 읽는 내내 미술작품을 바라보는 한 평론가의 섬세한 시선과 감성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미술작품에 어색한 이라 할지라도 이 책을 읽으면서 위, 아래 혹은 좌, 우의 작품들을 번갈아보면 조금씩 열리는 눈과 마음의 미적 여유를 느낄 수 있다.
향기... 이 책에 등장하는 미술작품들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늘 곁에 있고, 은은하게 그리고 고요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향기와 같은 작품들. 그는 이러한 작품들을 ‘송아지의 눈빛과 같다’하였다. 때로는 서늘한 바람결처럼, 또는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침묵과 부드러움이 함께 묻어난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지극히 욕망적이지 않고 상투적이지도 않다. 아주 무심한 듯 그러나 그 누구도 그렇게 들여다본 적이 없는 사물과 세계의 상을 어눌하게 드러낸 작업들인 것이다. 더운 여름, 이 한권의 책이 그 안에 들어 있는 소소한 감성의 바람들로 내 몸과 마음도 서늘해진다. 책 한 권의 피서가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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