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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인문/교양] 우리가 하는 일, 우리가 하는 놀이, 우리의 삶 전체를 끌어올려 주는 삶의 지침서 하정미
2008/07/05 40266

몰입의 즐거움
저자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출판사 : 도서출판 해냄
몰입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이희재 역
도서출판 해냄


현대인은 수많은 몰입의 상황에 직면한다.
업무에 있어서도 그렇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심지어 놀이와 여가 속에서도 수많은 몰입의 경지에 도달하곤 한다.
시카고 대학의 심리학과교육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는 시카고대학연구의 연구사업의 일환으로 ESM(Experience Sampling Method)이라는 경험추출법의 방법을 통하여 사람들이 여러 일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몰입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지를 조사, 연구하였다. 실험대상자는 호출기나 프로그램이 입력된 시계를 이용하여 대상자들에게 미리 배부한 소책자에 해당사항을 적어 넣도록 요구하였는데 하루를 두 시간 단위의 토막으로 쪼갠 다음, 아침부터 밤까지 신호를 한 토막 안에서 예고 없이 불시에 보내고 신호를 받은 사람은 자기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기입하고 그 순간 자신의 심리 상태를 점수로 평가하게 된다. 가령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어떠한 충동을 느끼고 있는지 얼마나 자신감을 갖고 있는지를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다. 주말이 되면 한사람이 기입한 소책자의 분량이 56쪽까지 채워지는데 여기에는 그 사람이 하루하루 무슨 일을 했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가 마치 영화 필름처럼 생생히 수록되게 된다. 여러 해 동안 시카고대학연구소는 2,300명가량의 사람으로부터 칠 만장이 넘는 응답지를 받았으며, 각 대학연구소와의 협력조사까지 합치면 이보다 세 네 배가 넘는 사례조사를 통하여 우리가 삶 속에서 얻는 경험의 형태를 살펴보게 된다.

현대인은 각자의 삶 속에서 각각의 상황 가운데 직면하게 되는데, 그 상황들 속에서 수많은 몰입의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몰입을 의식이 경험으로 꽉 차있는 상태, 느끼고, 바라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로 어우러진 상태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몰입은 삶이 고조되는 순간에 물 흐르듯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느낌을 표현한 말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운동선수가 말하는 물아일체의 상태, 신비주의자가 말하는 무아경, 화가와 음악가가 말하는 미적 황홀경과도 비슷하며, 각각의 사람들은 다른 활동을 하면서 몰입상태에 도달한 순간 그 순간의 경험을 묘사하는 방식은 놀라울 만큼 일반 우리와 별단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참으로 흥미롭지 않은가? 화가와 운동선수들이 경험하는 몰입의 순간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수없이 경험하는 몰입의 경지와 비슷하다는 것이 말이다.

대부분 몰입이 쉽게 일어나는 경우는 일련의 명확한 목표가 앞에 있을 때 훨씬 쉽게 일어난다. 특히 자기목적성을 가진 상태에서 주어진 상황의 과제의 난이도가 높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실력이 있을 때 훨씬 강하게 나타난다. 또한 몰입은 피드백의 효과가 빨리 나타나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몰입활동은 작업이 얼마나 순조롭게 이루어지는지, 이것이 옳게 진행되고 있는지 아니면 그르치고 있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게임을 하면서 조작 한번을 할 때마다 형세가 유리해졌는지 불리해졌는지를 알 수 있고, 성악가는 노래 한 소절이 끝날 때마다 자기가 부른 노래가 악보와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뜨개질하는 사람은 한땀 한땀이 자기가 의도하는 무늬와 맞아떨어지는지를 곧바로 알 수 있고, 외과의사는 칼이 동맥을 잘 피했는지 아니면 갑자기 출혈이 시작되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즉 몰입은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버겁지도 않은 과제를 극복하는데 한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온통 쏟아 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즉 ‘행동력’과 ‘기회’ 사이에서 조화가 이루어질 때 바람직한 몰입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의 경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몰입한 상황을 되돌아보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행복감 자체에 대한 만족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하여 얻은 몰입의 행복감을 통하여 나 자신의 의식 자체를 그만큼 고양시키고 성숙시킬 수 있는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에는 ESM을 통하여 얻은 흥미로운 DB가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중 과제와 실력의 높고 낮음 가운데 해당되는 몰입, 걱정, 무관심, 권태, 각성, 자신감 등의 위치를 표기해 둔 좌표가 있다. 물론 몰입의 위치는 과제와 실력 수준이 가장 높은 그래프의 오른쪽 상단부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이 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머지 경험의 내용들을 지금보다 더 나은 몰입의 경지로 개선할 수 있는 해답들을 쉽게 찾아 낼 수 있다. 그래프에서의 ‘각성’의 위치는 딱히 나쁜 위치가 아닌 과제의 상위, 실력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다. 각성상태에 높인 사람은 정신을 상당히 집중하고 능동적이며 대상에 밀착되어 있지만 그 정도가 높지 않아 몰입에서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를 개선시키기 위한 답은 자명하다. 실력 연마에 힘을 쏟으면 된다. 또하나 ‘자신감’의 경우는 과제의 수준은 낮고 실력이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경우는 과제의 수준을 높이게 되면 ‘몰입’의 상황에 도달할 수 있다.

위의 그래프의 내용을 본다면 몰입의 경험은 바로 ‘배움으로 이끄는 힘’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수준의 과제와 실력으로 지금에서 올라가게 만드는 힘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 중 5명중 한명이 업무에 있어서 몰입을 경험한다고 한다. 그 중 15%에 해당하는 사람은 한번도 몰입의 경험이 없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여가와 놀이에서의 몰입의 경험인데, 자기목적성이 높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자기목적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서 여가활동에 투자하는 비율이 높고, 성취도 또한 높았다. 자기목적성이 높은 사람은 여가시간에도 취미나 운동의 비율이 높았던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60%이상이 TV시청으로 시간을 단지 때우고 있었다.

몰입에 도달하기 위한 조건인 자기목적성이 갖는 특징은 어떠한 것을 막연히 하고 있는 것이 아닌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동적으로 여가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자신의 실력을 연마할 수 있는 기회를 별로 얻지 못한다. 사람들은 몰입을 낳기에 좋은 활동, 곧 정신노동이나 능동적 여가 활동을 할 때 비로소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자기 목적성을 가진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유달리 많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주일에 평균 4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면서 경직된 자의식에 매이거나, 방어의식이나 경쟁의식에 시달리지 않기 때문에, 좀더 유연하고 다양한 경험을 실험하고 이를 자신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롭고 재미있는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생각보다 인간이라는 유기체는 다채롭고 다양한 의식과 무의식의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훨씬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 속에서도 수많은 몰입의 상황 가운데 직면하면서 때로는 능동적으로 때로는 수동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자기 목적성을 통한 몰입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삶의 행복감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난 ESM 대상자는 아니지만 하루의 각각의 시간들을 어떻게 유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생각과 감정의 흐름 속에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왠지 단 며칠간의 기록만으로도 나의 삶에 숨어있는 경험들의 놀라운 비밀들이 드러날 것 같은 기대마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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