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한도
저자 : 박철상
출판사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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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 창문 하나만 나있는 허름한 집한 채, 나무 네그루, 세한도라는 그림 제목과 이상적에게 준다는 내용의 글씨 몇 자, 그리고 인장 몇 개, 이것이 전부인 세한도. 배경도 없고 인물도 없고 어찌 보면 너무도 간결한 그림인 세한도. 그렇다고 묘사력이 뛰어난 그림도 아니고, 화려한 채색 또한 없다. 세한도. 분명 눈앞에 보이는 것 이외에 무언가가 있다.
이 책은 추사 김정희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세한도를 통해 추사의 사상과 그의 예술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세한도는 한겨울의 풍경이 담겨있다. 그렇다고 세한도가 겨울에 그려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세한도는 풍경을 그린 게 아니라 이상적의 곧은 절개에 감복한 추사가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 그림이다. 자신이 유배 후에도 그가 써준 마음씀씀이가 너무도 고마워 그의 변함없는 절개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흔히 추사 김정희가 추구한 세계를 학예일치學藝一致의 경지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 말은 추사 이전에는 학문과 예술이 분리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할게다. 추사가 활동할 당시 조선시대에는 명실상부한 문인화가 자리 잡지 못했다고 한다. 그것은 그림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을 하나의 ‘잡기’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세기 후반 쯤 청나라 문화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서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추사는 문인들이 그림의 감상뿐만 아니라 창작에도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림에 대한 지식은 청나라와의 교류에서 필수적인 조건이었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추사는 그림과 관련된 서적을 탐독하고 직접 창작에 참여하였다. 추사에게 있어서 그림은 하나의 학문과도 같은 것이었고, 학문을 위한 중요한 방법론의 하나였다. 세한도는 추사의 이러한 학예일치적 사상과 함께 우리가 본받아야 할 곧은 선비정신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한점의 그림은 작품자체의 완성도 뿐 아니라 추사가 이 작품을 완성해낸 과정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더욱 중요할 것이란 생각을 해 보았다. 추사는 청나라에서 유행하던 화풍을 연구하여 그 근원을 탐구하여 그만의 새로운 화풍을 창조해내었다. 외래문화의 틀 속에 우리의 정신을 어떻게 닦아내야 하는지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요즘 들어 정통성이나 정체성, 한국성 등과 같은 인문학적이고도 본질적인 관점의 책들과 전시들이 눈에 들어온다. 시대가 급변이 돌아갈수록 본질을 귀히 여기고 지키나가며, 이를 숙고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의미에서 추사와 관련된 공부는 나에게 큰 도전과 함께 좋은 학습의 기회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머리와 가슴을 함께 살찌우는 일. 이번 겨울은 더욱 풍성한 겨울이 될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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