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저자 : 미치 앨봄/공경희 역
출판사 : 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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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미치 앨봄 저 | 세종서적 펴냄 이재영
에디를 따라간 천국 여행에서 일시정지란 없었다. 무거운 눈꺼풀, 쏟아지는 잠도 ‘두 번째 사람은 누군지, 세 번째,.. 다섯 번 째는 누굴까?’ 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천천히 읽어야 그 깊은 뜻을 맛볼 수 있을진대 빨리 알고 싶은 마음에 곧장 좇아간 나는, 대신에 집중함으로 음미했다.
스릴러가 아님에도 박진감 넘치는 전개에 정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가며 섬세히 엮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따뜻하고 정 많은 어머니, 무관심- 폭력 - 침묵으로 그를 상처로 얼룩지게 한 아버지, 연약하면서 약삭빠르기도 한 형 조, 조용히 그를 기다리고 사랑을 가르쳐 준 마거릿, 이들이 에디의 가족이다. 에디는 전쟁에서 한 쪽 다리를 잃고 큰 좌절을 겪었지만 가족의 사랑으로 조금씩 극복해가며 여러 일을 하다 아버지가 하던 놀이공원 정비공 일을 하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배운 기술이 있긴 했지만 다분히 강요에 의한 것이라 그는 늘 다른 꿈을 꾸곤 했다. 정비공이 된 자신을 부인하고 싶었다. ‘이 일이 나에게 썩 잘 어울리는군’ 하는 생각은 한참 후에 가지게 되는데 ...그에게서 뚜렷하지 않은 어떤 연민이 느껴졌다.
에디가 천국에 간 것은, 놀이기구 고장으로 인한 사고 때문이다. 긴박한 상황에서 재빠른 판단으로 침착히 대처하는 모습은 에디 삶의 지혜를 엿보게 했으나, 여자아이를 구하려다 에디는 목숨을 잃고 만다.
에디는 죽음과 동시에 몸이 훨훨 나는 듯 가벼움을 느꼈다. 절룩거리던 다리도 불편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일까? 그 해답은 에디가 만난 다섯 사람 중 한 명이 일러준다. “모든 분노가 사라지면 태어났을 때처럼 가벼움을 느끼게 되죠” 에디를 따라가는 중에 그,‘가벼움’에 대해 계속 생각한 나는 진정한 천국에 다다라서야 뜻을 이해했다. 내 머리가 무겁고 지끈거렸던 이유는 바로 불신과 원망..미움 이런 감정 따위 때문인 것임을. 자신에게 평온해지면 모든 게 평온해진다는 말도 나의 마음을 한참동안 요동치게 했다. 그래, 모든 걸 편안하게 바라보기 위해선 내 마음을 씻어야해..
에디는 인연- 희생- 용서- 사랑- 화해의 과정에서 만난 다섯 사람으로 인해 정말로 고요한 사람이 되었다. 다섯 사람은 무심코 스쳤던 파란 사내, 희생한 대위, 용서함을 가르쳐 준 루비, 평생 사랑한 마거릿, 전쟁터에서 구해주지 못한 소녀다. 에디의 어제를 되살려 고통을 치유해 준 후엔 그들 역시 생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되어 편안히 사라진다.
인상깊었던 장면은 용서의 만남에서다. ‘루비 가든’의 루비 부인에게 들은 아버지의 삶. 에디는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되살아나 분노로 들끓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몰랐던 얘기를 듣고선 차츰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깊이 사랑하던 마음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은 것이다. 에디는 루비의 말대로 아버지를 용서하기로 한다. 식당 구석에 앉아 침묵하고 있는 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간 하지 못했던 많은 말들을 울분에 차 토해내며.. 마지막엔, “이제 됐어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시킨 일을 다 했을 때 하던 말) 라며 눈물을 흘린다. 지켜보던 노부인 루비는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모습으로 변해 빛을 내며 사라진다. 루비의 역할은 에디의 마음에서 증오를 씻어주는 것이었나 보다. 그럼으로써 자신도 루비 가든의 설립자 부인으로서의 죄책감을 덜 수 있었겠지. 루비는 그랬다. 루비 가든이 없었다면 여러 사람이 불행할 일은 없었을 거라고...
희생의 만남에서 대장이 한 말도 떠오른다. “희생은 잃는 게 아니라 다른 이에게 넘겨주는 거야.”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건 슬퍼할 일이 아님을 알려 준 대장. 그는 전쟁터에서 지뢰를 밟아 산산조각이 났지만 부하 대원들을 구함으로 기꺼이 죽음을 맞은 사람이다. 에디는 그 큰 희생 앞에서 몸들 바를 몰랐고 한없이 부끄러워졌는데 나도 그랬다. 한 번도 남을 위해 내 것을 포기한 적 없는 ... 설사, 내가 기억하지 못한 시간 중에 그런 희생의 일이 있었다해도 분명 후회하고 손익을 따졌을 터. 반면에 나 때문에 희생한 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생각하니 고개가 절로 떨구어졌다. 아름다운 희생을 감내할 수 있는 아니,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에디와 헤어진 후 정말로 나는 기도를 했다. 부족한 건 알지만 그래도, 세상의 많은 사람을 포용하고 도울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말이다. 나의 진심이 하늘에 통했으리라 믿는다.
다시 에디와 함께 한 여행 얘기로 돌아와, 처음엔 내가 상상하던 천국과 거리가 상당히 멀어서 실망했음을 고백한다. 하물며 에디는 어땠을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꿈꾸던 낙원이 아닌 지난날의 고통을 들추어내며 자신을 괴롭게 만든 천국. 그 고통은 인연을 배우게 했고 어제를 이해하고 용서하게 해주었다. 비로소 에디는 어제를 사랑하게 되고 에디 자신을 포함한 세상과의 화해를 하는데.. 그제야 진정한 천국을 만난 것임을 에디도 나도 눈빛 교감으로 알았으며 천국, 그 자체를 느끼었다.
아~! 천국이란 이런 곳이구나. 지은 죄를 사하여 주고 과거를 잊을 수 있게 함이 아닌, 나의 죄를 깨닫게 해주고 과거를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알고 지내든 그렇지 않든 나의 삶을 함께 한 사람들, 그 인연의 소중함.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존재치 않으며 용서하지 못할 것도 없는 인생사. 매순간을 충실히, 살아야 함을 일깨워준 천국의 가르침.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며 에디를 따르게 했던 미치 앨봄의 뜻을 알겠다.
지금도 내가 무심히 지나친 생의 조각들 속에 무수한 사랑과 희생이 있겠지. 오로지 ‘나’만 생각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게 이끌어준 미치 앨봄.
다섯 사람이 꺼내는 지난날의 일 때문에 에디가 괴로워할 땐 솔직히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나..싶었다. 하지만 에디의 응어리가 차츰 사그라지는 걸 보면서 상처 따위는 매몰시켜선 씻겨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됐다. 부딪침으로 스스로를 완전히 용서할 수 있어야 세상에 태어났을 때의 자신을 찾게 되는 것이다. 아무런 상처도 없는.
그럼, 미치 앨봄이 말한 '죽음' 그리고 '천국'은 진정 무엇일까? 생명이 끊긴 후에 오는 제3의 이상적인 세계? No~ 천국은 갖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존재치 않으며, 용서 못 할 것도 없는 인생사. 그것을 둘러싼 모든 것엔 보여지지 않은 나의 이야기들이 얽히고 설키어 있을 터. 무심히 지나친 생의 조각들 속에 무수한 사랑과 희생. 매순간을 충실히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죽음이 천국을 가져다 준다 할 때, 여기서 '죽음'은 '나를 되찾다'로 풀이해야 된다. 세상의 빛을 처음 보았을 때의 나를 생각해 보라. 어떠한 슬픔도, 불평도, 원망도 없던 순결한 나. 나를 찾는 것이 곧 아름다운 죽음이고 천국이다
어찌 작가의 깊은 속뜻을 완전히 헤아릴 수 있겠냐만 적어도 나에겐 ‘천국’이 지상에서도 가능한 것이란 생각을 들게 했기에 천국을 ‘나를 되찾는 과정’으로 해석해 보았다.
불행하거나 세상에 홀로 우뚝 서있다거나, 고통으로 신음하거나 생의 의미를 알고 싶거나, ......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면, 에디를 통해 자신을 찾고 천국을 체험해 봄으로 삶을 더 풍요롭게 살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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