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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교양] 박하사탕: 지우고 싶지만 지워지지 않는 과거 민병우
2007/12/31 73869

박하사탕: 지우고 싶지만 지워지지 않는 과거
저자 : .
출판사 : .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후회도 없이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만이 과거의 일에 얽매여 지내는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어느 인생이고 후회스럽지 않은 인생은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많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 많은 선택의 기록에서 모든 것을 옳게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또한 운명적인 일로 인해 자신이 선택할 겨를도 없이 인생의 고통을 맛보는 경우고 있습니다.

“나 다시 돌아갈래”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영호(설경구 분)는 자신이 20년 전 구로공단 야학에 다닐 때 갔던 야유회 장소에 느닷없이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철로 위에 올라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기차와 마주섭니다.
그는 도대체 어느 시간, 어느 장소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는 자살을 결심하기 얼마 전 주식을 해서 전 재산을 날립니다. 게다가 사채까지 빌려 써서 산더미 같은 빚더미에 올라앉고 맙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호는 가구점을 동업하던 친구에게도 배신을 당합니다.
그에게는 그를 보듬어줄 가족마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는 가족에게도 버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영호는 희망 없는 삶에서 자살을 결심합니다.
그는 예전에 닳고 닳은 형사로서 시국사범을 고문한 전력이 있습니다. 그런 모든 잘못되고 비뚤어지고 엇갈려버린 영호의 운명은 한 밤중에 일어난 한 사건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그는 광주사태 때 진압군으로 파견되어 오발사고를 내는 바람에 여학생을 죽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손이 씻을 수 없는 피로 더럽혀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순수한 꿈을 접어버리고 함부로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구원받지 못 할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인생이고 후회 없는 인생은 없을 겁니다. 이런 후회스런 일들에는 아주 커다란 것도 있고, 자질구레한 일상의 일들도 포함됩니다. 후회스런 일들은 자신의 잘못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일로 인해 생기기도 합니다.
<박하사탕>에서 20년 전의 영호는 매우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광주사태를 겪으면서 자신이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그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 때문에 죽은 여학생의 피를 손에 묻히게 된 겁니다. 여기서 ‘손’은 우리의 양심을 상징합니다. 재판정에 설 때 한쪽 손을 들고 선서를 하는 이유는 거짓없이 진술하겠다는 상징성을 담고 있습니다. 이미 피로 더럽혀진 그의 손을 더 씻을 수 없다고 생각한 영호는 이번에는 형사가 되어 시국사범을 고문하게 됩니다.

그는 고문을 당하던 자의 똥을 손에 묻히게 되면서, 이제 순수했던 때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그의 인생은 완전히 빗나가고 맙니다.

만약 영호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운명적인 사건에서 비롯된 것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면, 그의 죄책감은 덜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는 자신의 순수함을 잃지 않았을 겁니다.

영호는 “나 돌아갈래”를 외칩니다. 그의 문제는 과거의 순수하던 때로 돌아가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회스런 일이 일어날 경우,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살고 싶다고 흔히 말합니다. 하지만 인생을 되돌릴 수 없기에 자포자기 하고 맙니다. 이미 망가진 인생,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살아갑니다.
만약 <박하사탕>에서 영호가 자신의 과거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요?
“나도 나약한 한 인간에 불과하며, 내 자신의 잘못된 선택과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사건의 틈바구니 속에서 고뇌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면 말입니다.
아마도 그는 죽음의 문턱을 넘지는 않았을 겁니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도 순수함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후회스런 과거를 받아들이고, 화해해야 합니다.

이런 과거에 대한 후회는 지금 나만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지혜롭고, 똑똑하고, 매사에 조심성이 많은 사람들도 이런 후회스런 일을 저지르기 마련입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다윗만 하더라도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영웅이 될 때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남자의 아내를 취하고 후환이 두려워, 그 남자를 전쟁에 내보내 죽게 니다. 그리고 그 남자의 아내와 결혼까지 합니다.
그는 말년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후회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그는 길에서 우연히 마차를 탄 행렬과 시비가 붙게 고, 불같은 성격을 이기지 못하고 마차에 탄 노인을 죽이고 맙니다. 자신이 죽인 사람이 아버지라는 사실도 모른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까지 합니다. 그는 늙어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지만, 이미 어머니이자 아내인 요카스테는 자살을 하게 되고,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알아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장님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또 다른 영웅인 헤라클레스도 그의 용맹과 업적에 비해 커다란 실수를 여러번 저질렀습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그만 아내와 아이들을 모두 죽이고, 마는 실수를 범하게 되고, 깊은 후회의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스신화와 구약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완벽한 인간형만을 제시하지 않는 다는 겁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드러내는 약점, 후회스런 선택, 어리석은 행동,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생겨나는 엉뚱한 행동등 인간안에 가지고 있는 좋고 나쁜 것을 다 드러내고 있다는 겁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거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따라서 후회스러운 일이 많은 사람이 어리석거나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건 그냥 인생의 과정일 뿐,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인생의 통과의례일 뿐입니다.

특히 요즘처럼 완벽한 인간형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과거의 후회스런 일들은 더욱 사람을 괴롭힙니다. 누구 하나 이런 후회스런 일에서 벗어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자기도 모르게 완벽한 인간형이 되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완벽함을 추구하면 할수록 후회스런 일들은 더욱더 많아질 뿐입니다.

아무도 후회할 일은 하지 않고 싶어합니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후회하는 것일 뿐, 그 당시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결정이나 판단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깊은 산에서 길을 잃어버리듯이 판단이 흐려지는 수가 있습니다. 또한 깊은 산중에서 폭우를 만나 계곡물에 떠내려갈 수 있는 것처럼 불가피한 요인도 작용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인생에서 후회스런 일들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인생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지나간 선택에 대해 후회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후회의 감정에 몰입해서는 곤란합니다.
후회의 감정은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죽음을 맞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입니다.

샘에게 보내는 편지(희망과 사랑)
막시무스의 지구에서 인간으로 유쾌하게 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