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열광
저자 : 김정운
출판사 : 프로네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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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별 관심 없던 제가 후지필름과 관계를 맺고 있는 성도에 입사 한 후 일본에 관한 책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없다, 국화와 칼, 사카모토 료마 등등… 최근에는 일본에 관한 신간이 뜸했는데 일본열광이라는 책이 나와 읽었습니다.
한 동안 어떻게 하면 잘 놀 것인가? 라는 휴테크를 주제로 잘 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가끔 TV에 나와 재미 있는 강연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국민대 김정운 교수의 책입니다. 독일에서 문화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는 안식년 기간 동안 일본에 체류하면서 문화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본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일본을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과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이라는 두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리엔탈리즘은 실제의 동양과는 상관 없는 서양인들이 제멋대로 만들어내는 신비한 동양입니다. 오리엔탈리즘의 반대편에는 옥시덴탈리즘이 있는데 이는 동양인들이 제멋대로 만들어내는 신비한 서양입니다.
근대 일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탈아론(脫亞論: 아시아를 벗어나자는 주장)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일본인들에게 “악우(惡友)와 친하면 악명을 면하기 어렵다. 우리는 진심으로 아시아 동방의 나쁜 친구를 사절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일본이 서구 문명국의 일원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후, 일본은 서양의 일원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고 일본 = 서양 이라는 등식 속에서 서양화를 가속 합니다. 그런 중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서양, 심지어는 서양 보다 더 서양적인 서양이 일본 속에서 탄생합니다. 예를 들면, 1896년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에 대한 설명서를 보면 “ 조사이어 콘더가 설계, 영국의 자코비언 양식, 르네상스와 이슬람풍의 모티프, 1층 기둥은 토스카나식, 2층 기둥은 이오니아식, 스위스 산장풍, 아제쿠라풍의 벽, 미국 펜실바니아의 컨트리 하우스 이미지, 이슬람풍 디자인의 타일….” 등등. 이렇게 다양한 양식으로 설계된 건물… 일본이 만들어낸 서양에는 존재하지 않은 서양식 건물입니다.
또 하나 일본을 이해 하는 키워드는 자발적 오리엔탈리즘입니다. 서양인들이 존재하지 않는 신비한 동양을 만들어 내는 오리엔탈리즘에 응답하여 서양이 원하는 동양을 자발적으로 생산해 주고, 그 유리한 결과를 취하는 문화 전략입니다. 오늘날 세계인들이 감동하는 일본 문화의 내용들은 대부분 이 자발적 오리엔탈리즘의 산물입니다. 저자 역시 자신이 감탄하는 일본의 음식 문화 또한 이 자발적 오리엔탈리즘의 일종이라고 봅니다. 근대 이전에 일본인들이 오늘날의 아기자기하고 예쁜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늘날 외국인이 접하는 일본의 음식 문화는 일본인의 일용할 양식과는 전혀 다르며 이는 신비적 오리엔탈리즘의 환상에 대응하는 자발적 오리엔탈리즘으로 생산되는 미각과 시각이 종합적으로 구현된 것이 오늘날 구매되는 일본의 음식이라는 것입니다.
서양인의 시각에 맞춰 자신을 생산해 내고, 더 나아가 서양 자체를 자기 마음대로 생산해 내는 일본의 자발적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이 바로 근대 일본의 동력입니다. 일본은 단순히 서구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서양은 일본을 만들어 냈고, 일본은 다시 자신이 원하는 서양을 만들어냅니다. 이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의 대위법적 구조가 오늘날 일본 문화의 내용이라고 저자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일본은 서양을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서양은 전혀 실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끊임 없이 서양에는 없는 그 어떤 서양적인 것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으며, 역설적이지만 바로 이것이 오늘날 일본을 유지시켜 주는 경쟁력이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며 저자의 결론은 아래와 같습니다.
“일본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 그래서 일본은 하나도 안 받아들인다. 일본은 그저 매번 다르게 편집할 따름이다. 그래서 일본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쓰다 보니 책이 아주 무거운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 같은데 책에는 일본식 도시락인 벤또,일본식 전통 여관, 목욕 문화, 만화 등 아주 재미 있는 일본 대중 문화에 대한 얘기가 많습니다. 그래서 300페이지가 넘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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